[백승현의 시각] 돈으로 사는 평화 '타임오프'

입력 2023-09-12 18:01   수정 2023-09-13 00:50

근로시간면제자(노조 전임자) 3834명, 1인당 평균 월급(풀타임 기준)은 637만원.

고용노동부가 이달 초 발표한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 운용 현황 조사 결과를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고용부가 지난 5월부터 3개월 동안 근로자 1000명 이상 사업장 중 노동조합이 있는 480곳의 근로시간면제제도 운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다. 타임오프제에 대해 이해가 깊지 않은 일반 회사원들로서는 “일을 안 하는 직원에게 회사가 월급을 저만큼 준다고?”, 기업으로선 “일하지 않는데도 월급을 받는 사람이 저렇게 많다고?” 하며 공분을 샀을 일이다. 그런데 웬일일까. 정부 발표 직후 여러 언론에서 대서특필했음에도 노동단체 등에서 “노사 자율의 문제” “노조 통제 시도” 운운하며 발끈한 것을 제외하고는 반응이 영 뜨뜻미지근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 아는 걸 가지고 새삼스레 호들갑을…. 정부 발표도 빙산의 일각일 뿐.” 십수 년 노사관계 업무를 해온 기업 인사 노무 관계자의 말이다.
준 쪽만 처벌하는 이상한 노조법
타임오프제도는 노조 간부가 조합 활동에 쓰는 시간을 근로 시간으로 인정해 회사가 임금을 지급하는 제도로, 복수노조 도입과 함께 2010년 시행됐다. 당시 회사로부터 임금을 받는 노조 전임자가 급증하자 이들에 대한 임금 지급을 금지하되 조합원 규모에 따라 면제 시간 한도를 설정해 산업 안전, 산재 예방 등에서 노조의 역할을 인정하고 활동도 보장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번 실태 조사에서 일부 드러난 것처럼 현행 타임오프제도는 법과 현실이 따로 놀고 있다. 이유는 간명하다. 법이 허용한 범위를 넘는 노조의 요구에 사용자가 응하면 노동조합법이 금지하고 있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해 사업주가 형사처벌을 받는다.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이다. 받은 쪽에 대해선 처벌 규정이 없다. 이렇다 보니 노조가 스스로 법정 한도를 넘겨 근로시간면제나 노조 운영비를 요구한 사실을 양심선언하거나 사용자가 자해를 결심하지 않는 한 세상에 드러날 일이 없는 것이다. 이런 ‘노사 짬짜미’의 배경에는 알고도 눈을 감은 정부도 있다.
기업의 노조 지원 내역 공시해야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한 노동 전문가는 “타임오프제는 남북 관계와 같다”고 했다. 북한의 무력도발을 막기 위해서는 인도적 지원은 물론이고 북한이 원하는 것을 내줘야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실적으로 기업이 산업현장의 평화를 유지하고 싶으면 돈을 주고라도 평화를 사야 한다는 씁쓸한 이야기다.

이런 비아냥이 나오는 데는 현행 노조법 탓이 크다. 준 쪽을 처벌하려면 받은 쪽도 처벌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상식적인 노사관계 구현을 위한 방법은 또 있다. 다음달부터 시행 예정인 노조의 회계 공시 의무화에 맞춰 기업에도 노조 지원 내역을 공개하도록 하면 된다. 회사 내에 정규직이 몇 명인지, 파견·기간제 근로자는 몇 명인지 고용 형태까지 공시를 강제하는 마당에 어려운 일도 아니다.

“노조 운영은 노조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글로벌 스탠더드 얘기까지 갈 것도 없다. 있는 법이라도 지키게 하려면 ‘기브 앤드 테이크(give&take)’ 과정이 투명해야 한다. 돈을 주고 사 온 평화는 오래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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